77.
거우위왕만이 아니라 주위에서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신하들의 눈에도 눈물이 고였다. 거우위왕은 곧 눈물을 거두고 말했다.
“나는 불쌍한 그 모녀를 그냥 둘 수가 없소! 세상에서 가장 큰 근본은 효행일진대 어린 나이에 앞 못 보는 어머니를 위해 어찌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있겠소. 나는 쌀 백 섬을 내어 그 모녀를 도울 것이오.”
거우위왕의 말이 끝나자마자 그 곳에 모인 여러 신하들은 저마다 옷감을 내겠다,
돈을 내겠다, 곡식을 내겠다 하며 은지를 돕기로 결심했다. 거우위왕은 서둘러대궐로 돌아와 불쌍한 은지 모녀를 위해 곡식과 옷감을 내놓았다. 그리고 며칠후 거연무왕은 은지의 효행을 높이 칭찬하고 궁녀로 삼았다. 이처럼 거우위왕은 어려운 백성들은 돌보는데도 관심을 기울렸다. 백성을 괴롭히는 관리들에게는 엄격한 처벌을 내렸다.
또 어느 해 가을, 용주골 마을에 심백흥(沈白興)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심백흥은 어머니가 병환으로 세상을 떠나자 어머니를 못잊어 자기의 손으로 어머니의 초상을 그리어 하루 세 번씩 그 앞에 절하고 삼 일에 한 번씩 산소에 성묘하여 간소한 음식을 생시와 같이 차려 놓고 분향하였다. 이러한 효행이 알려지자 국가에서도 표창하였다. 또한 야로에 사는 박광림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아들 박광림은 어머니를 생각한 나머지 매일 산소에 나가 절하고 돌보고 있을 때 산소 옆에 있는 고사목(枯死木)이 마치 자기 어머니의 모양같이 보였다. 처음에는 의심이 나 자세히 살펴 보았더니 역시 틀림없는 나무였으나 때때로 어머니의 환상이 나타났다. 박광림은 어머니를 잊을 수가 없어 그 나무를 업고 집으로 돌아와 마루 위에 정성스레 올려 놓았다. 다시 쳐다보니 어머니의 부드러운 모습이 역력이 나타났다.
“어머니!”
큰 소리로 불러 보았으나 대답은 들리지 않고 오직 어머니 모습만 나타날 뿐이었다. 다시 손으로 만져 보았으나 다만 싸늘한 나무만 서 있었다. 이러한 소문이 한번 퍼지자 꼬리에 꼬리를 물고 온 나라 방방곡곡에 다 퍼져 사람들이 벌떼처럼 모여 들었다. 그런 중에 박광림이 어머니를 부르며 여전히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