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의 영향으로 조조(曹操)라고 하면 교활, 권모사술(權謀詐術), 냉혹 등 온갖 악덕을 구비한 인물이라는 이미지를 안겨주고 있다. 흔히 ’난세의 영웅‘이라는 표현도 그런 이미지를 조장하는데 일조하고 있다. 이 말이 생긴 상황은 이렇다. 당시엔 인물비평이 성행 했는데 그 대가(大家)로 알려진 허자장(許子將)이 매월 첫째 날(월단: 月旦) 여는 인물비평회는 가장 권위 있는 것으로 평가 받고 있었다. 인물비평을 일컬어 월단(月旦) 또는 월평(月評)이란 것도 이 고사에서 유래한 것이다. 어느날 조조는 허자장에게 “나에 대한 비평을 해다오” 하고 말하자 묵묵히 조조를 응시한 채 입을 다물고 있었던 허자장은 조조의 간청에 못이겨 입을 열었다. “당신은 치세의 능신, 난세의 간웅이오” 이 말은 ’태평세월 일 때는 유능한 신하지만 난세를 만나면 간웅이 될 것이다‘라는 뜻이다. 간웅이란 말이 풍기는 이미지 때문에 자칫 나쁜 평가를 내릴 것이라고 알기 쉽지만 결코 그런 것만은 아니다. 왜냐하면 치세와 난세는 정반대 되는 어느 시대에도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인물이란 좀처럼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치세에는 유능하다는 평가를 받아도 난세에는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를 모르거나 그 반대로 난세에는 활약을 해도 치세에는 전혀 쓸모가 없는 인간들이 훨씬 더 많은 법이다. 예를 들면 4대에 걸쳐 재상을 배출한 명문가의 아들이면서도 그 명문 의식이 재앙이 되어 조조에게 멸망당한 아들이며 유능한 관료로서 형주(荊州)를 통치하고 한 때는 유비(劉備)의 비호자가 된 적도 있는 유표(劉表), 이 두 사람은 전자의 좋은 사례다. 만일 난세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유비나 손권(孫權)은 아마도 후세에 이름을 남기는 일은 없었을 것이 틀림없다. 조조는 허자장의 말에 껄껄 웃었다고 하니 평이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었다. 사실 조조는 일국의 「리더」 즉 정치가로서 이외에도 몇 가지 얼굴을 갖고 있다. 우선 알려져 있는 것이 시인(詩人)이다. 조조는 아들 조비(趙丕), 조식(趙植)과 함께 당시의 시단을 대표하는 존재인 「횡삭(橫槊)의 시인」이라 불린다. 조조는 전쟁을 하면서도 시흥이 일면 삭(창)을 옆에 끼고 곧 잘 시를 썼다. 또 그는 학문을 좋아해서 병법서의 고전인 손자의 편찬에 주해(註解)도 썼다. 조조는 정치가 뿐만 아니라 시인,학자, 병법가 등 그는 전천후형 인물이다. 이런 인물이라면 난세 뿐만 아니라 치세에도 어떻게 처신했을지 쉽게 생각해 볼 수 있다. “저 녀석과는 아무래도 마음이 맞지 않는다” 라든가 “저 사람은 주는 것 없이 밉다” 라고 생각되는 사람이 있다. 조직에 속해 있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이런 상대가 한 둘은 있을 것이다.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라 윗자리에 있는 사람이라도 이런 감정을 마음속에서 꺼내어 없애버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최고 지도자가 감정이 이끄는 대로 상벌(賞罰)이나 인사(人事)를 행한다면 그 조직은 원활하게 굴러갈 수 없다. 우리는 싫은 상대의 모든 것을 부정하고 싶어하는 경향이 있다. 얼굴 「보조게」도 미운 사람은 흉터자국으로 보일 수 있다. 성인군자가 아닌 범부으로서야 이것은 어느 정도 어쩔수 없다고 할 수도 있지만 문제는 최고 지도자가 그런 감정을 어떻게 억제 하느냐 하는 데 있다. 적어도 주위 사람들로부터 직언을 들었을 땐 화를 내지 말고 귀를 기울일 정도의 도량을 가져야 한다. 송왕조(宋王朝) 창업자 태조 조광윤(趙匡胤)을 보자. 그는 명군으로서 칭송이 자자한 인물이지만 희로애락의 감정을 곧바로 표출하는 사람이었다. 강직한 인격자로 알려진 재상 조진(趙晉)과 있었던 일을 보자. 어느날 조진이 어떤 인물을 천거하고 싶어 상주했는데 태조는 하락하지 않았다. 다음날 또 다시 상주했지만 역시 거부당했다. 그러나 조진은 다음날 세 번째로 상주문을 올렸다. 태조는 화가 치밀어 상주문을 뺏아 발기발기 찢어서 방바닥에 내 던졌다. 하지만 조진은 얼굴색을 조금도 변하지 않고 조각난 서류를 묵묵히 주워 모으고는 퇴출했다. 조진은 다음날 찢어진 서류를 밥풀로 말짱하게 이어 붙혀 겁도 없이 다시 제출했다. 그러자 그토록 강한 태조는 생각을 바꾸어 조진이 천거한 인물을 승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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