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우상 장편 역사소설] 다라국의 후예들
125.
일본군이 가양국의 남쪽인 육전(陸前)을 향해 진군한다는 소식을 듣자 가양국 압산왕은 1만의 군사를 이끌고 직접 출전하였다. 압산왕(押山王)은 일본군이 머물고 있는 곳을 확인하고는 곧장 말을 내달렸다. 하지만 그는 일본군의 계략에 말려 들고 말았다. 일본군은 진군하던 도중에 아주 넓은 뻘을 발견하자 더 이상 진군하지 않았다. 뻘 주변에는 강이 흐르고 곧잘 안개가 끼곤 하였는데 대원진인(大原眞人) 장군은 그것을 이용하여 가양군을 무찌를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대원진인(大原眞人) 장군은 뻘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는 곳에 진(陣)을 치고 일부 군사들로 하여금 적(敵)이 관찰할 수 있는 자리에 편안하게 앉아 쉬도록 하였다. 그리고 나머지 군사들을 산속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 적의 내습(來襲)을 기다렸다. 맞은 편에 있던 가양군(加良軍)은 일본군이 편안하게 앉아 쉬는 것을 보고 때를 놓치지 않고 기습을 감행하였다. 안개가 자욱하게 깔려 있던 탓에 가양군은 미처 땅바닥이 진흙 투성이의 뻘밭이란 사실을 미처 간파하지 못했던 것이다.
기습을 감행한 가양군은 졸지에 진흙 수렁에 갇히고 말았다. 전위부대인 기마병들은 말이 진흙에 빠져 허둥대는 바람에 어쩔줄을 몰랐고, 그들을 지휘하던 압산왕(押山王) 역시 마찬가지였다. 일본군은 이 때를 놓치지 않고 사방에서 포위하며 돌진하였다. 돌격대의 선봉대장은 흑전(潶田)이었다. 흑전(潶田)은 가양국을 정벌한다는 소식을 듣고 일본군에 자원한 무사(武士)였다. 흑전(潶田 : 구로다)는 키가 9척에다 힘은 장사였고, 창과 칼을 다루는 솜씨가 대단했다. 그리고 그의 칼날은 가양국 압산왕(押山王)의 목을 쳤다. 왕을 잃은 가양군은 한동안 허둥댔지만 곧 대열을 정비하고 맹공(猛攻)으로 일본군을 압박해 왔다. 일본군은 수적으로는 많지만 아주 불리한 상태에 빠졌다.
어느새 일본군은 가양군에 의해 완전히 포위되고 말았다. 하지만 가양군은 일본군의 수가 워낙 많아 쉽사리 일본군을 이기지 못했다. 단지 일본군을 둘러싸고 조금씩 포위망 거리를 좁혀 오고 있었다. 가양군은 일본군의 식량이 고갈되면 스스로 포위망 속으로 뛰어들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가양군의 판단은 적중했다. 시일이 지나면서 일본군의 군량미는 보급로가 차단되어 고갈되었고, 그 때문에 일본군은 굶주림에 허덕였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대원원진(大原眞人) 장군은 두려움에 떨며 탈출로(脫出路)를 모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