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우상 장편 역사소설] 다라국의 후예들
115.
한참 울던 효동은 미파왕후(美巴王后)에게 말했다.
“저는 왕후마마에게 큰 죄인입니다. 다라국 거타지 대왕의 공주님을 먼 임마국(다매도)까지 데리고 가서 해서는 안될 고생을 하도록 한 저의 죄를 어찌 용서받을 수 없습니다. 저는 전쟁에서 포로가 된 몸입니다. 포로로서 응당 죄값을 받고자 하오니 이 자리에서 저에게 참형을 내시옵소서.”
그러자 미파왕후는 이렇게 말했다.
“그건 안될 말입니다. 효동님은 나의 첫 사랑입니다. 세월이 흘러도 우리가 이렇게 만난 것은 하늘이 도우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신라에서는 적군의 포로라도 항복하면 함부로 죽이지 않는데 어찌 죽인단 말입니다. 비록 다라국이 신라의 적국이라고는 하지만 다라국 왕과 왕족 나의 친척들입니다. 그러니 왕족은 물론 장수들도 죽이지 않을 것입니다. 다라국 거우위왕은 내 손자입니다. 그러니 비록 적국의 왕이지만 죽이지 않고 거기에 상응한 예우를 할 것입니다.”
미파왕후의 말에 효동은 허리를 굽혀 이렇게 말했다.
“왕후마마의 성은이 하해와 같사옵니다”
마파왕후는 효동의 얼굴을 두 손으로 쓰다듬으며
“많이 늙으셨군요.”
하면서 지난날 두 사람이 사랑하던 모습을 머릿속에 회상하면서 마음 속으로 흐느껴 울었다.
그날 효동은 궁궐안 별채에서 혼자 잠을 청했지만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그는 그날 밤 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미 신라 탈해왕의 왕비가 된 미파왕후에게 더 이상 첫사랑에 대한 미련이나 마음의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아서였다. 미파왕후(美巴王后)는 효동의 죽음을 애통해 하면서 양지바른 산에 무덤을 만들어 주었다. 다라국(多羅國)은 신라와의 전쟁에서 대패하여 신라의 영토가 되었지만 탈해왕은 미파왕후의 건의에 따라 다라국의 거우위왕(巨優位王)과 왕비, 왕자 등 왕족을 죽이지 않고 옛 다라국 영토(합천)에서 편안하게 살도록 하였다. 이는 거우위왕의 부왕(거연무왕)이 일모(日侔 : 히호고)의 외삼촌이며, 미파왕후와 남매간이고, 거우위왕은 미파왕후의 조카가 된다는 점을 감안했기 때문이다. 또한 앞으로 신라가 백제와 전쟁을 하자면 많은 장수들과 병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포로가 된 다라국 장수와 병사들은 모두 죽이지 않고 신라의 장수와 병사로 편입하여 대우하였다.
신라가 주변국들을 침공하여 합병하자 국력이 매우 강해졌다. 그런데 임라국(대마도)에 거주하는 왜구들이 가끔 남해안에 나타나 부녀자를 납치하고 곡식을 약탈해 가는 일이 있었다. 이를 이유로 신라의 탈해왕은 임라국(대마도) 정벌을 꿈꾸었고, 이 참에 아예 임라국(대마도)를 신라의 영토로 복속시킬 계획을 세웠다. 탈해왕이 임라국(대마도) 정벌을 허락한 것은 걸손국(구주)의 이소지왕의 왕비였던 미파왕후의 아들 일모(日侔: 히호고)를 임라국(대마도) 영주로 삼고자 함이었다. 물론 탈해왕이 이런 결심을 하도록 한 사람은 미파왕후였다.